레버넌트 - 자연에 압도당한 그들(레버넌트 해석, 나무와 물의 의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열연, 레버넌트 해석)
"투쟁"이라는 단어는 어떤 것과의 대립을 통해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종족번식의 본능을 위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며 삶이라는 투쟁을 이어간다. 이 영화는 혹독한 자연, 그 자연 속에서 목숨을 연명해오는 맹수들, 척박한 환경속에서 탐욕밖에 남지 않은 다양한 종족의 인간, 그리고 자아와 본능을 상대하는 생존을 위한 영화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자"의 주 내용의 골자는 19세기 모피상들이 미국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휴 글래스"라는 사냥꾼이 회색곰과의 싸움 후 동료들에게 배신당하며 4000km를 횡단하여 살아남은 이야기를 각색하였다. 이 휴 글래스의 이야기는 그 당시 여러 언론사를 통해 신문에 보도되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고 한다.
영화는 간단히 생각한다면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복수를 한다"라는 이야기지만 영화 내적인 부분에서 생각해볼 부분이 굉장히 많다. 먼저 글래스는 미국인이지만 인디언 포니족과 결혼을 하였고 그 포니족은 미국인들에게 살해당한다.(주인공의 아내로 나오는 포니족 또한 인디언 부족중에서는 난폭하기로 유명한 부족이다.) 또한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에게 납치 살해당하고 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머리가죽을 벗기고 살려주기도 한다. 프랑스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며 이런 살인과 살해당하기를 반복하는 굴레의 아메리카 북부대륙은 그야말로 살아남기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터나 다름이 없다.
글래스에게는 아군도 적군도 없다. 아내가 미국인 장교에게 살해를 당하였으며 프랑스인들과도 오랜 시간 대립을 하였을 것이다(미국인이기에) 아들과 자신 또한 미국인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였고 대부분의 인디언들 또한 자신의 아군이기 보다는 적이다. 글래스에게는 인종과 국경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며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그저 자신과 아들의 생존이 전부인 그런 존재인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오로지 자식에게만 집중하고 사랑을 쏟는 그의 모습은 펭귄의 부성애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는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살육을 할때와 당할때 적들과 적이 아닌자들을 만날때 항상 강가나 물이 나온다. 같은 물을 먹고 그들은 싸우며 그들의 피를 물로 씻어내는 살육의 굴레 안에서 그들은 살아간다. 그 피가 담긴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나무는 그 물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신념이다. 복수나 일어버린 자식을 찾는 것 혹은 돈과 욕망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의 톤은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로케이션이 무색할 정도로 어두운 편이다. 전기적 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촬영기법과 추운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강한 나무와 사람들을 아름답게 담았다. 다만 놀라울만큼 압도적 연기를 보여주는 디카프리오의 글래스가 보여줘야할 신념은 관객들에게 어필되지 않으며 아들을 향한 강한 부성애는 펭귄처럼 감동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하디, 돔놀 글리슨 등의 매력적인 배우들과 이야기를 갖고 있는 캐릭터들의 케미도 대자연의 척박함과 삭막함에 압도당한다. 인디언, 프랑스, 미국의 이야기와 개입도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글래스의 슬픈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에게는 "하트 오브 더 씨", "작은 거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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